오늘 아침 8시 반 전화가 울렸다.
주말 아침 8시는 나에게는 평일 새벽 4시 같은 거였다.
짜증이 조금 난 채로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 친구가
" 도서관에 슬램덩크가 있대. 9시에 여니까 같이 가자. 내가 차 운전할게." 라며 호기롭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곤 참 좋은 생각이라 들었다.
그래서 "참 좋은 생각이다"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몸은 무겁고, 피곤했다. 당장이라도 무거운 눈꺼풀을 그대로 중력의 힘에 맡기고 싶었다.
그래도, "좋아" 라고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늘 하루 최고의 선택이였다.
8시 55분 부슬비가 살짝 오던 아침에 친구를 기다리며
에어팟 밧데리가 없는걸 깨달았다.
"에잇." 이라는 말을 내뱉고는 은근한 차소리들과 함께 친구를 기다렸다.
노래 없는 기다림이 지루해질 무렵,
저 멀리서 초보운전을 티 내며 까만 차를 끌고 오는 친구가 아주 반가웠다.
(친구는 초보치고 운전을 잘 하는 편이다ㅋㅋ)
책을 찾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렉싱턴의 유령을 들었다.
일본인이면서 왜 렉싱턴이람,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성팬은 아니였다.
뭐랄까 그 사람 특유의 뒤틀림?이랄까
상실의 시대나, 1Q84를 읽을 때 참 많이 느꼈는데,
그런 글을 읽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근데, 오늘 본 렉싱턴의 유령은 나의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요새 집중력이 바닥이라 책 읽는게 힘든 나였는데
3시간만에 뚝딱 다 읽었다.
문장이 이리 좋았다니..? 내가 몰랐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 책들을 다시 봐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의 소설들 중에서 침묵이라는 소설이 제일 좋았는데
가장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어떤 일, 사람, 사물의 깊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나의 깊이를 깊게 파 나가는 것.
이것이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댓글